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시대, 과연 우리에게 축복인가?

편집부 / 기사승인 : 2018-03-14 12: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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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경제=이판석] 사무실에 앉으면 기사검색 로봇이 오늘 들어온 각 종 사건 사고의 영상 및 기사데이터와 아울러 편집의 방향을 서로 논의한다. 편집 회의가 끝난 후 *아카이브로 전송된 뉴스들이 시간 별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기획 특집 인터뷰를 하기 위해 유엔사무총장의 집무실로 취재봇(취재로봇) 동행한다. 인터뷰를 마친 후, 기사는 바로 회사 내 아카이브로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긴장을 해서인지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내 손목의 바이오리듬 체크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병원과 연계된 전용 무인 캡슐을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고 이어서 닥터봇(의사로봇)이 신속한 진료와 처방 및 처치가 이루어졌다. 곧바로 몸속에 영양 수액이 투입되었다. 저녁이 다될 무렵, 가볍게 와인으로 목을 축이려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러나 낮에 진단받은 의무기록이 레스토랑에 전송되어 실제 와인은 못 마시고 와인 맛의 캡슐 하나만 받아 내 혀를 위로해야만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무인 자율 주행 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반갑게 맞아 주는건 아침의 내 로보바이저였다. 골몰히 창밖을 바라보며 알파고 이전의 내 생활을 돌이켜봤다.

사람들은 모두 편리하고 빠른 생활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전과 삶의 편안함이 매우 친숙함으로 우리 생활에 다가왔다. 예를 들면, 무인자율주행서비스, 의료혁명, 개인 집에 대한 가정혁명으로 까지 사람의 삶에 깊숙하게 다가왔다. 과연 이러한 *4차 산업혁명 즉, 인공지능 중심의 세계가 인간에게 문제를 야기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우리는 선뜻 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이처럼 우리는 편리함을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 뒤에 야기되는 부작용을 깊게 성찰하지 않은 것 같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 이 로봇과 한 인간의 대결은 그 때 당시에 세간의 주목을 받는 엄청난 대결이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그래도 바둑천재 이세돌이 컴퓨터정도는 이기겠지.” 라고 대부분 생각 했었다.

그런데 결과에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놀랄만했다. 바로 인간의 완전한 패배 4대1 여기에서 인간은 충격을 크게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공지능 이라는 기술이 우리에게 있어서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인공지능 알파고는 사람과 유사하게 학습 방법을 익힌다. 딥러닝 이라는 알고리즘 바탕으로 강화학습을 한다.

이러한 방식의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분야의 일 또는 인간이 하고 있는 일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 인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맞다.“라고 대답해야만 했다. 인류의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서의 인공지능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발명이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 인간은 문제점을 마주 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로,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줘 전문적인 업종인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이러한 직종들에 종사한 사람들은 로봇 인공지능에게 권한을 빼앗겨 결국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것들로 인해 인간에게는 일자리 부족이라는 가장 큰 문제를 야기 시킬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엔 인간의 가치창출이라는 면에서 어두운 면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두 번째로 도덕성에 커다란 문제가 야기 된다는 것이다.

지금 2050년에도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이 되는 것은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처럼 그 안에 도덕성과 같은 윤리를 내포를 하냐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도덕성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프로토콜(명령체계) 그 자체로만 움직이고 행동한다. 만약에 이것을 부정적으로 악용을 하면 그 순간 사람에게 편의와 행복을 주던 인공지능이 한 순간 악마의 탈을 쓴 무서운 기계로 변할 가능성이 있을 것 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편익 앞에서 경계를 하며 법적 규제와 같은 경계를 다시 한 번 재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전쟁에서 인공지능 로봇을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인간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과 반대되는 세력에 인간들의 생명을 인공지능 로봇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을 것 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로봇은 인간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라는 윤리적 원칙에 대해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은 적절한 인공지능 로봇들의 행동과 규제를 통해 자신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즉, 오래 전 영화 ‘터미네이터’ 처럼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을 통제하고 간섭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이라는 편리함 때문에 인간과 인간의 대화단절과 소외감현상이 심해졌다. 과거에도 산업혁명이 지나면서 대화가 많이 줄었지만, 그 보다 더 극심한 개인주의가 더 확대됨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의 소외감 현상이 가속화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로봇은 그 날에 상황에 맞춰 사람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에 어쩌면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들보다 대화를 더 많이 할 것이다. 즉, 맞춤화로 인해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인간과 소외된 생활을 할 것 이다.

이처럼 2050년의 우리에게는 인공지능은 필수적이면서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보물이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을 하여, 조금 더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귀중한 지침이 되게끔 인공지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하고 경계를 해야 한다. 2

016년 3월 9일 바둑 천재 이세돌과 알파고 인공지능의 대결은 지금까지도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그 후로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수 많은 축복들과 혼란을 안겨주었다. ‘인공지능’ 어쩌면 인간이 만든 엄청난 보석을 관리하고 규제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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