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법, 나체사진 협박 등 반사회적 불법대부계약에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반환 명령
금감원-법률구조공단 협업 성과… “7월 시행되는 개정 대부업법의 신호탄”
“돈을 빌렸다는 이유로, 나의 사진이 지인들에게 유포됐습니다. 협박과 모욕의 시간들이 끝났습니다. 이제야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이낸셜경제=전병길] 지난 5월 2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초고금리 대출에 성착취 협박이라는 악랄한 수법을 동원한 불법사금융업자들에게 피해자가 지급했던 ‘원금 전액’까지 돌려주라는 결정이었다. 기존 판례들이 이자에 국한된 반환 판결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고도 획기적인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소송은 금융감독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지난해 12월 체결한 업무협약에 따라 공동 대응한 결과다. 피해자 구제와 불법대출 근절을 위한 공공기관의 협력이 어떤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성착취 협박까지 동원된 불법사금융… 4천% 이자 강탈”
사건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계가 막막했던 A씨는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접할 수 있었던 대출 광고에 기대를 걸었다. “신용이 낮아도 대출 가능”이라는 문구를 믿고 연락을 취한 결과, A씨는 15회에 걸쳐 총 510만 원을 차용했다.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연이율은 최대 4,171%에 달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몇 달 사이 A씨는 890만 원을 갚아야 했다. 채무 상환이 지연되자 불법사금융업자들의 수법은 더욱 잔혹해졌다. 담보용으로 받은 A씨의 나체사진을 지인에게 유포했고, 추가로 더 퍼뜨리겠다는 협박도 이어졌다.
이런 위협은 단순한 사채 문제가 아닌, 명백한 성범죄이며 인권침해였다.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던 A씨는 결국 금융감독원에 도움을 요청했고, 공공기관과 공익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가해자 6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지법 “불법계약 자체가 무효, 원금도 돌려줘야”
재판부는 A씨가 불법사금융업자 6명을 상대로 청구한 원리금 890만 원, 손해배상 200만 원을 모두 인용했다.
판결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초고금리 대부계약은 반사회적 불법행위이며, 그 자체로 무효에 해당한다.
따라서 불법적으로 얻은 이자뿐 아니라, 원금 역시 부당이득으로 간주해 반환해야 한다.
나체사진 유포 협박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이에 대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 책임이 존재한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피해자의 주장에 다투지 않아 민사소송법 제150조에 따른 자백간주 판결로 전액을 반환토록 한다”고 판시했다.
피해자 구제의 새 지평… 7월 개정 대부업법과 맞물려
그간 법원은 법정이자율(연 20%)을 초과하는 이자에 대해서만 무효 판단을 내리는 선에서 멈췄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피해자가 빼앗긴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기존 판례와는 궤를 달리한다.
더 나아가 오는 7월 22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대부업법은 반사회적 불법대부계약을 원천 무효화한다. 성착취 추심, 인신매매, 폭행·협박 등을 수반한 대부계약의 경우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 상환의무도 전면 면제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개정법 시행에 앞서 불법사금융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고 피해자 보호 원칙을 선도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제도적 보호를 강화하는 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선례”라고 설명했다.
“불법사금융, 더는 혼자 싸우지 마세요”
금융감독원은 불법사금융 피해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무료 채무자대리인 제도 ▲불법대부계약 소송 지원 사업 ▲성착취 등 악성 추심 대응 상담 등이 있으며, 피해자는 금감원(☎1332→3번) 또는 법률구조공단(☎132)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도 ‘불법사금융 지킴이’ 사이트를 통해 쉽게 신청할 수 있다.
불법사금융은 단순한 돈 문제를 넘어 인권을 침해하고 삶을 파괴하는 범죄다. 이번 판결은 "불법계약은 무효이며, 피해자는 끝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법부의 강력한 메시지다.
파이낸셜경제 / 전병길 mbcclu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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