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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살 이후의 시간, 백운포FS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일상 |
[파이낸셜경제=김세훈 기자]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라는 날짜는 언제나 묘한 여백을 만든다.
아침부터 하루는 평소보다 느리게 흘러가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서두르기보다는 정리하려 든다. 오전에는 집 안에 잔잔한 공기가 감돌고, 오후가 되면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저녁 무렵이 되면 말수가 줄고, 식탁 위에서는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수고를 이해하는 눈빛이 오간다.
그날 역시 그랬다.
하루의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보냈고, 크리스마스이브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조용히 흘러갔다. 그렇게 하루가 거의 끝났다고 생각할 즈음, 또 하나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누군가의 적극적인 제안도, 특별한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연락이 오갔고,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늦은 저녁, 풋살 동호회 백운포FS(B.U.P FS)에서 인연이 된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공을 차는 날은 아니었지만, 이 만남은 분명 풋살에서 이어진 시간이었다. 운동이 끝난 뒤에도 흩어지지 않고 이어져 온 관계, 그 연장선 위에 있는 밤이었다.
풋살 경기가 끝나면 보통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운동으로 소진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거나, 다음 일정으로 곧바로 이동한다. 하지만 백운포 인근에서 활동하는 백운포FS의 사람들에게 풋살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 공이 멈춘 뒤에야 비로소 관계가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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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살 이후의 시간, 백운포FS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일상 |
이들의 움직임은 늘 비슷하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울리면, 급히 정리하지 않는다. 숨을 고르며 벤치에 앉고, 운동화 끈을 풀며 대화를 이어간다. 누군가 건네는 물 한 병, 별 의미 없는 농담, 그 사이에 흐르는 짧은 침묵까지. 이 모든 장면은 반복되며 하나의 리듬이 된다.
기자가 바라본 백운포FS는 단순한 취미 모임과는 결이 다르다.
이들은 함께 뛰는 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로 나아간다. 말수가 적은 사람은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활기찬 사람 역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각자의 성격과 속도가 억지 없이 공존한다.
풋살장 위에서는 땀과 호흡이 섞인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순간적인 판단을 공유하고, 실수에는 웃음으로 반응한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사람들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뢰가 생긴다. 이 신뢰는 경기력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서로의 말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 태도로 이어진다.
12월 24일 밤의 만남은 그런 신뢰가 더욱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대화는 빠르지 않았고, 결론을 서두르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의 선택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계획이 어긋났던 순간을 담담히 꺼냈다. 조언이 오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듣는 데 쓰였다. 이 자리에서는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태도가 더 중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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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살 이후의 시간, 백운포FS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일상 |
백운포FS의 관계가 인상적인 이유는 관계에 무게를 싣지 않는 방식에 있다.
이들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나 ‘얼마나 깊은 관계인가’를 굳이 정의하지 않는다. 바쁜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기고, 시간이 나면 다시 모인다. 오랜만에 나타나도 설명은 필요 없다. 다시 공을 차고, 다시 웃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슨해 보이는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말은 줄어들고, 대신 이해는 깊어진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상태를 짐작하고, 분위기를 읽는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리듬으로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이다.
이날의 밤이 특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라는 날짜가 사람들을 잠시 멈춰 세웠고, 그 멈춤 속에서 관계는 한 단계 더 깊어졌다. 누구도 관계를 증명하려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과는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풋살공이 둥근 것처럼, 이들의 관계도 각이 없다.
의견이 달라도 쉽게 부딪히지 않고, 감정이 올라와도 오래 남지 않는다. 말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고,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렇게 정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쌓여간다.
밤은 깊어갔고, 하루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와 달리, 자리는 묘하게 따뜻했다. 그 온기는 특별한 사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소란스럽지 않았기에 오히려 오래 남을 밤이었다.
백운포FS(B.U.P FS)가 만들어낸 또 다른 일상은 이런 모습이다.
공이 굴러가지 않는 날에도 이어지는 만남, 특정한 날짜가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순간들. 12월 24일의 이 밤은,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같은 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풋살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이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공이 멈춘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쌓여가는 일상 속에서 백운포FS의 관계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깊어지고 있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진짜 같은, 그런 밤에 대한 기록으로.
파이낸셜경제 / 김세훈 기자 bodo88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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